위인 사주 사전 · 1856–1943

니콜라 테슬라

교류 전기를 실용화한 발명가.

차례
  1. 치마 위로 떨어진 소년
  2. 음식의 부피를 재야 먹는 아이
  3. 형 다니엘
  4. 콜레라와 아버지의 약속
  5. 머릿속에서 설계하는 발명가
  6. 5만 달러짜리 농담
  7. 하루 2달러의 도랑 파기
  8. 전류 전쟁
  9. 줄 없이 켜진 유리관
  10. 새벽 2시 30분의 불
  11. 콜로라도의 인공 번개
  12. 화성에서 온 신호?
  13. 흰 비둘기와 호텔들
  14. 「죽음의 광선」
  15. 「방해 금지」 팻말
  16. 운명 앱으로 본 테슬라
차례
운명 앱으로 계산한 사주
시일월연
?甲나무乙나무丙불
?午말未양辰용

운명 앱 풀이 — 「꾸며 내지 않아도 기운이 저절로 흘러나와, 사람들이 먼저 알아채는 분이에요.」

양력 1856-07-10 · 남 · 태어난 시는 기록에 없어 「?」로 둡니다

나무 2 · 불 2 · 흙 2 · 쇠 0 · 물 0 — 기운이 여린 사주 · 나를 돕는 기운: 물

운명 앱과 같은 방식으로 계산했습니다. 옛날 달력으로 적힌 생일은 지금 쓰는 달력의 날짜로 바꾼 뒤 계산합니다.

치마 위로 떨어진 소년

니콜라 테슬라는 1856년 7월 10일, 지금의 크로아티아 땅인 스밀리안 마을의 세르비아계 집안에서 태어났습니다. 그 무렵 그곳은 오스트리아 제국의 국경 지대였습니다. 아버지 밀루틴 테슬라는 동방 정교회의 신부였습니다.

테슬라는 발명에만 몰두한 아이가 아니라, 여느 아이들처럼 장난치기를 좋아하는 호기심 많은 소년이었습니다. 높은 데서 놀다가 마을 부인의 긴 치마 위로 떨어져 치마를 찢어 놓은 일도 있었습니다. 그는 이처럼 위험한 장난을 즐기곤 했습니다.

그의 장난은 때로 생명을 위협할 만큼 위험했습니다. 물에서 놀다가 익사할 뻔하기도 했고, 뜨거운 우유통 속에 들어가 산 채로 익을 뻔한 적도 있었다고 합니다. 살아날 가망이 없다는 판정을 세 번이나 받았을 정도로 테슬라는 매우 위험한 상황에 자주 놓였다고 전해집니다.

음식의 부피를 재야 먹는 아이

어린 시절의 테슬라는 상당히 유별난 성격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식사 시간이 되면 그는 바로 수저를 들지 않았습니다. 대신 접시에 놓인 음식의 부피를 먼저 재야 했습니다. 만약 음식의 부피를 재지 않으면 그는 식사에 아무런 흥미를 느낄 수 없었다고 합니다.

그는 반짝이는 크리스털이나 날카롭게 각진 면을 보면 흥미를 느끼곤 했습니다. 하지만 여성들이 차고 있는 귀걸이에는 격렬한 반감을 나타냈습니다. 또한 신체적 접촉에도 매우 민감했습니다. 「누가 총을 겨누고 있다면 모를까」 다른 사람의 머리카락은 절대 만지지 않았다는 이야기가 유명합니다.

형 다니엘

니콜라 테슬라의 형 다니엘은 수학과 과학 분야에서 테슬라가 자신을 형에 비하면 별것 아닌 수준이라고 말할 정도로 뛰어난 능력을 갖춘 천재였습니다. 하지만 다니엘은 열두 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불의의 사고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사고는 테슬라의 아버지가 알고 지내던 친구가 선물해 준 말을 타다가 다쳐서 발생했다고 합니다.

이러한 비극적인 사건은 어린 테슬라의 마음속에 무서운 생각을 자주 심어주었습니다. 이 일은 후에 테슬라가 병적인 공포증과 강박관념을 가지게 되는 데 큰 영향을 끼쳤다고 전해집니다. 강박관념이란 어떤 생각이나 행동을 반복적으로 해야만 마음이 놓이는 상태를 말합니다.

콜레라와 아버지의 약속

졸업 후 스밀리안으로 돌아온 테슬라는 곧 콜레라에 걸리고 말았습니다. 그는 아홉 달 동안 침대에 누워 지내야 했고, 여러 번 죽음의 문턱까지 가기도 했습니다. 병상에 누워 있는 동안 그는 마크 트웨인의 초기 작품들을 읽으며 회복을 기다렸습니다.

절망적인 순간에 그의 아버지가 약속을 하나 했습니다. 원래 아버지는 테슬라가 신부가 되기를 원했습니다. 하지만 아들이 병에서 회복한다면, 최고의 공학 학교에 보내주겠다고 약속했습니다. 공학 학교는 기술과 기계를 연구하는 교육 기관을 말합니다.

머릿속에서 설계하는 발명가

흥분할 때마다 눈앞에는 반짝이는 빛과 같은 환상이 나타났습니다. 테슬라는 이를 「때때로 강한 빛과 함께 나타나는 이미지들 때문에 겪게 되는 특이한 고통」이라고 표현했습니다. 그는 이러한 고통스러운 형상에서 벗어나기 위해 엄청난 정신적 훈련을 거듭했습니다. 그 결과 그는 머릿속에 자신만의 상상의 세계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이 상상의 세계를 바탕으로 그는 특별한 설계도나 모델이 없어도, 또 실험을 하지 않고도 발명에 필요한 모든 과정을 머릿속으로만 해결할 수 있었습니다. 새로운 발명품을 만들 때마다 그는 항상 모든 과정을 머릿속으로 실제처럼 구현한 후에야 행동에 옮겼다고 합니다.

5만 달러짜리 농담

미국에 건너간 테슬라는 에디슨의 회사에서 일자리를 얻었습니다. 그는 회사의 낡은 발전기를 더 효율적으로 돌리는 방법을 찾아냈고, 발전기 스물네 대를 다시 설계해 자동 조절 장치를 달아 성능을 크게 높였다고 전해집니다.

테슬라의 자서전에 따르면, 에디슨 기계 공장의 관리자는 「표준 기계 스물네 가지」를 설계하면 보너스 5만 달러를 주겠다고 했습니다. 일을 마쳤지만 돈은 나오지 않았습니다. 테슬라는 그 약속이 「알고 보니 짓궂은 농담이었다」고 적었습니다. 뒷날의 이야기에서는 약속한 사람이 에디슨 본인으로 바뀌어 전해집니다. 받지 못한 보너스 문제로 다툰 끝에 테슬라는 회사를 그만두었습니다.

하루 2달러의 도랑 파기

투자자들은 테슬라가 제안한 새로운 교류 모터와 전기 송전 장비 아이디어에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1886년 전기 회사가 가동되자 투자자들은 제조 분야가 너무 경쟁이 치열하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들은 단순히 전기 공공 서비스를 운영하는 쪽을 택하며 테슬라의 회사를 버리고 새로운 회사를 세웠습니다. 이 과정에서 테슬라는 가진 돈을 모두 잃고 빈털터리가 되었습니다. 주식을 받는 대가로 회사에 넘겨주었던 특허권들까지 모두 통제력을 잃고 떠나보내야 했습니다.

그는 하루에 2달러를 받으며 여러 전기 수리 일을 하거나 도랑을 파는 노동자로 일했습니다. 도랑을 파는 일은 땅에 구덩이를 만드는 고된 육체노동입니다. 훗날 테슬라는 1886년의 일부를 고난의 시기로 회상하며 이렇게 적었습니다. 「과학, 기계학, 문학의 여러 분야에서 쌓은 나의 높은 교육은 나에게 조롱처럼 느껴졌다」.

전류 전쟁

테슬라가 웨스팅하우스와 교류 관련 계약을 맺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에디슨은 매우 화가 났습니다. 이때부터 두 사람 사이의 전류전쟁이 시작되었습니다. 테슬라의 교류 시스템에 위협을 느낀 에디슨은 곧바로 교류가 위험하다는 우려를 담은 자료들을 찍어내기 시작했습니다. 에디슨은 교류 전기를 이용해 애완동물들을 의도적으로 잔인하게 죽인 장면들이 포함된 전단지를 배포하며 교류 시스템을 비난했습니다.

에디슨의 공격은 멈추지 않았습니다. 그는 죄수들의 사형에 교류 전기 충격을 사용하자는 주장을 하기도 했습니다. 또한 알바니에서 전압을 800볼트로 제한하는 법안을 통과시키려 했습니다. 한편 웨스팅하우스가 소유하게 된 특허들에 소송을 거는 등 끊임없이 교류 시스템을 공격했습니다.

두 회사가 모두 자금난에 시달리게 되면서 전류전쟁은 더욱 심화되었습니다. 웨스팅하우스는 에디슨의 행동에 대항하기 위해 교류에 대한 교육 캠페인을 벌였습니다. 연설과 기사 등 다양한 방법으로 교류의 우수성을 알리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했습니다. 웨스팅하우스는 법에 위반되는 음모를 꾸민 죄목으로 에디슨을 고소하기도 했습니다.

줄 없이 켜진 유리관

1893년, 테슬라는 필라델피아의 프랭클린 연구소와 세인트루이스의 국립 전등 협회 연설에서 무선 통신을 시범적으로 보여주었습니다. 그는 5킬로와트짜리 불꽃 송신기를 사용했습니다. 송신기를 통해 30피트 떨어진 곳에 있는 가이슬러 관에 무선 주파수 자극을 전달했고, 그 결과 가이슬러 관에 불이 들어오게 만들었습니다. 가이슬러 관은 기체에 전기를 흘려보내 빛을 내게 하는 장치입니다.

이 시범에는 안테나와 공중선, 접지, 그리고 송수신 장치 등 무선 통신의 기본 요소들이 포함되었습니다. 그는 구경꾼들에게 이런 장치가 언젠가 「알아들을 수 있는 신호」를 실어 나르게 될 것이라고 장담했습니다. 흔히 무선 통신은 1895년 굴리엘모 마르코니가 처음 해냈다고 하지만, 한국어 위키백과는 테슬라가 두 해 앞서 같은 요소들을 선보였다고 적고 있습니다.

새벽 2시 30분의 불

1895년 3월 13일 새벽 2시 30분, 뉴욕 사우스 5번가 33~35번지의 실험실에서 큰 화재가 발생했습니다. 불길은 실험실을 삼켰고 비싼 실험 기기들이 모두 타버렸습니다. 총 피해액은 100만 달러를 넘겼습니다.

이 화재로 테슬라가 연구하던 무선 통신과 무선 에너지 전송, 운송 수단에 관한 자료들이 사라졌습니다. 조만간 X선으로 세상에 알려질 현상에 대한 연구와 상업적 가치가 컸던 액화탄소 제조기술도 불속에서 함께 사라졌습니다. 보험을 하나도 들어 놓지 않았던 테슬라는 이 화재로 인해 파산 지경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콜로라도의 인공 번개

1899년 콜로라도 스프링스에서 테슬라는 인위적으로 번개를 방출하는 실험을 진행했습니다. 그는 1억 볼트의 전압을 얻을 수 있고 여러 주파수의 전류를 발생시킬 수 있는 변압기를 사용했습니다. 하지만 실험에 소모되는 전력이 너무 심했습니다. 결국 콜로라도 스프링스의 전력 발전기가 타버리면서 전력이 차단되는 일이 일어났습니다.

전력이 끊기자 테슬라는 자신의 사비로 발전기에 생긴 손해를 보상했습니다. 그러면서 자신의 연구소에 계속 전력을 공급해 달라고 요구하며 연구를 이어갔습니다. 그는 전 세계를 연결하는 무전 전신 시스템을 개발하고 에너지를 효율적으로 보내는 방법을 연구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습니다.

화성에서 온 신호?

1899년, 니콜라 테슬라는 콜로라도 스프링스에서 무선 수신 장치를 연구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번개가 일정한 주기를 가지고 발생하는 것을 관찰하며 지구가 하나의 커다란 도체라는 생각을 바탕으로 실험을 이어갔습니다. 그러던 중 테슬라는 장치를 통해 정체를 알 수 없는 소리를 포착했습니다.

그 소리는 우연히 들리는 잡음이 아니었습니다. 테슬라는 소리에서 규칙적인 패턴을 발견했습니다. 그는 이 신호가 자연적인 현상이 아니라 다른 행성에 있는 존재가 인위적으로 만든 교신이라고 확신했습니다. 그는 이 수신이 화성 또는 금성에서 오는 것이라고 추정했습니다.

흰 비둘기와 호텔들

늘그막의 테슬라는 매일 공원으로 산책을 나가 비둘기들에게 먹이를 주었습니다. 테슬라는 호텔 방 창가에서 비둘기들을 돌보기 시작했고, 다친 새들이 건강을 회복할 수 있도록 정성껏 보살폈습니다. 그는 매일 어떤 다친 흰 비둘기가 자신을 찾아왔다고 말했습니다. 테슬라는 부러진 날개와 다리가 나을 때까지 비둘기가 편안하게 지낼 수 있도록 직접 장치까지 만들어 주었습니다. 이 새를 돌보는 데만 2,000달러 넘는 돈을 썼습니다.

그는 몇 년마다 호텔을 옮겨 다녔습니다. 1923년에는 밀린 숙박비와 비둘기가 어지럽힌 방 때문에 세인트 레지스 호텔에서 쫓겨났고, 1930년에는 호텔 펜실베이니아를, 1934년에는 호텔 거버너 클린턴을 떠나야 했습니다. 한때는 마르게리 호텔에 방을 잡기도 했고, 1934년 마지막 거처가 된 호텔 뉴요커로 옮겼습니다.

「죽음의 광선」

1934년, 테슬라는 기자들에게 자신이 설계한 초강력 무기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그는 이 무기가 모든 전쟁을 끝낼 수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신문들은 이 장치를 「죽음의 광선」이라고 불렀습니다. 이것은 공격용이 아니라 한 국가의 국경을 보호하는 방어용 무기였습니다. 침입하는 군대를 200마일 밖에서 파괴하고, 250마일 거리에 있는 적군 비행기 10,000대를 격추할 수 있다는 설명이었습니다.

테슬라는 이 무기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언론에 밝히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는 미국 전쟁부와 영국, 소련, 유고슬라비아에 설계도를 보냈습니다. 1984년 베오그라드의 니콜라 테슬라 박물관 기록물에서 드러난 계획에 따르면, 이 장치는 텅스텐이나 수은 덩어리에 수백만 볼트의 전압을 가해 가스 분사 진공관을 통해 흐르게 하는 방식을 사용한다고 합니다.

「방해 금지」 팻말

1943년 1월 7일 밤, 86세의 니콜라 테슬라는 호텔 방에서 홀로 숨을 거두었습니다. 부검을 담당한 보조 의료 검시관은 사망 시간을 밤 10시 30분으로 추정했습니다. 사인을 조사한 결과, 그는 관상동맥 혈전증으로 사망한 것으로 결론지어졌습니다.

그의 시신은 다음 날 한 여급에 의해 발견되었습니다. 여급은 호텔 방 문에 걸려 있던 '방해 금지' 표지판을 무시하고 방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그 표지판은 이미 사흘 전부터 문에 걸려 있었습니다.

테슬라가 사망한 후 이틀 뒤에는 미국 연방수사국이 그의 소지품을 압수했습니다. 당시 제2차 세계 대전 중이었기에, 테슬라가 만든 것으로 알려진 빔 무기 설계도 같은 물건들이 미국 시민이 아닌 그의 조카 사바 코사노비치에게 넘어가 적국에 전달될 것을 우려했기 때문입니다. MIT의 전기공학 교수인 존 G. 트럼프가 소지품을 분석했으나, 그는 테슬라의 물건 중 적대적인 세력에게 위험이 될 만한 것은 없다는 보고서를 남겼습니다.

운명 앱으로 본 테슬라

운명 앱 풀이는 니콜라 테슬라를 「꾸며 내지 않아도 기운이 저절로 흘러나와, 사람들이 먼저 알아채는 분이에요」라고 풉니다. 기자들을 불러 모아 「죽음의 광선」을 이야기하고, 구경꾼 앞에서 줄 없이 유리관에 불을 켜 보인 그는 분명 사람들의 눈길을 끄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눈길이 그를 지켜 주지는 못했습니다. 그는 한때 하루 2달러를 받고 도랑을 팠고, 숙박비를 밀리며 호텔을 옮겨 다니다 홀로 숨을 거두었습니다.

이 글은 한국어·영어 위키백과의 「니콜라 테슬라」 문서를 바탕으로 썼습니다.

생일 출처: 위키데이터 Q9036

같은 풀이가 나온 위인

태어난 날의 기운이 같아 운명 앱이 같은 풀이를 내놓는 사람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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