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인 사주 사전 · 1867–1934

마리 퀴리

방사능을 연구해 노벨상을 두 번 받은 과학자.

차례
  1. 다섯째 막내 마니아
  2. 집으로 온 실험 도구
  3. 열 살에 겪은 두 죽음
  4. 금메달, 그리고 몰래 다니는 대학
  5. 언니와 맺은 약속
  6. 껴입고 버틴 다락방의 겨울
  7. 폴란드로 같이 가겠다던 남자
  8. 우라늄에서 나오는 보이지 않는 빛
  9. 비가 새는 창고 실험실
  10. 조국의 이름을 붙인 원소
  11. 노벨상에서 빠질 뻔한 이름
  12. 비 오는 거리의 사고
  13. 쏟아진 비난과 두 번째 노벨상
  14. 전쟁터로 간 「꼬마 퀴리」
  15. 미국에서 받은 라듐 1그램
  16. 주머니 속의 시험관
  17. 운명 앱으로 본 마리 퀴리
차례
운명 앱으로 계산한 사주
시일월연
?辛쇠庚쇠丁불
?卯토끼戌개卯토끼

운명 앱 풀이 — 「날카로운 금속 날이 부드러운 봄 숲 사이를 가로지르는 것처럼, 섬세함과 예리함이 공존하는 독특한 매력을 지닌 사람이세요.」

양력 1867-11-07 · 여 · 태어난 시는 기록에 없어 「?」로 둡니다

나무 2 · 불 1 · 흙 1 · 쇠 2 · 물 0 — 기운이 여린 사주 · 나를 돕는 기운: 흙

운명 앱과 같은 방식으로 계산했습니다. 옛날 달력으로 적힌 생일은 지금 쓰는 달력의 날짜로 바꾼 뒤 계산합니다.

다섯째 막내 마니아

마리 퀴리는 1867년 11월 7일, 폴란드 바르샤바에서 마리아 스크워도프스카라는 이름으로 태어났습니다. 집에서는 「마니아」라고 불렀습니다. 그때 폴란드는 나라가 없었습니다. 바르샤바는 러시아 제국의 땅이었습니다.

부모는 둘 다 교사였고, 마리아는 다섯 남매의 막내였습니다. 아버지 쪽도 어머니 쪽도 나라를 되찾으려는 봉기에 힘을 보태다 재산을 잃은 집안이었습니다. 그 탓에 마리아와 언니 오빠들은 어려서부터 넉넉하지 못한 살림 속에서 자랐습니다.

집으로 온 실험 도구

아버지는 수학과 물리를 가르쳤습니다. 마리아가 평생 붙든 바로 그 두 과목입니다. 러시아 당국이 폴란드 학교에서 실험 수업을 없애 버리자, 아버지는 실험 도구를 집으로 가져와 아이들에게 쓰는 법을 가르쳤습니다.

아버지는 폴란드 편을 든다는 이유로 결국 학교에서 쫓겨나 월급이 적은 자리로 밀려났습니다. 투자로 돈까지 잃자, 집에 남학생들을 하숙시키며 살림을 메웠습니다.

열 살에 겪은 두 죽음

하숙생에게서 옮은 장티푸스로 맏언니 조피아가 먼저 세상을 떠났습니다. 3년이 채 지나지 않은 1878년 5월에는 어머니가 결핵으로 숨졌습니다. 마리아가 열 살 때였습니다.

어머니는 독실한 가톨릭 신자였지만, 어머니와 언니를 잇달아 잃은 마리아는 신앙을 내려놓았습니다.

금메달, 그리고 몰래 다니는 대학

마리아는 1883년 6월 12일, 여학교를 금메달을 받고 마쳤습니다. 그 뒤 쓰러져 한 해를 시골 친척 집에서 쉬었는데, 우울증 때문이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다시 공부를 하고 싶었지만 여자는 대학에 들어갈 수 없었습니다. 마리아와 언니 브로니스와바는 「날아다니는 대학」에 다녔습니다. 러시아의 눈을 피해 몰래 열리던 폴란드 사람들의 대학으로, 여학생도 받아 주었습니다.

언니와 맺은 약속

마리아는 파리에서 공부하고 싶었지만 꿈을 미뤘습니다. 두 자매는 약속을 했습니다. 먼저 마리아가 돈을 벌어 파리에서 의학을 공부하는 언니를 돕고, 그다음에는 언니가 마리아를 돕기로 했습니다.

마리아는 시골 지주 집안의 가정교사로 들어갔고, 쉬는 시간에는 혼자 공부를 이어 갔습니다. 그 집 아들 카지미에시와 사랑에 빠졌지만, 그의 부모는 가난한 친척 처녀와의 결혼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그는 훗날 이름난 수학자가 되었습니다. 늙은 수학 교수가 된 그는 마리아가 세운 바르샤바 라듐 연구소 앞, 1935년에 세워진 마리아의 동상 앞에 말없이 앉아 있곤 했다고 합니다.

껴입고 버틴 다락방의 겨울

1891년 말, 스물넷의 마리아는 마침내 폴란드를 떠나 파리로 갔습니다. 프랑스에서는 「마리」라고 불렸습니다. 언니네 집에 잠시 머물다가, 대학 가까운 동네에 다락방을 얻어 파리 대학에서 물리와 화학, 수학을 공부했습니다.

돈은 늘 모자랐습니다. 추운 겨울에는 가진 옷을 몽땅 껴입고 버텼고, 공부에 빠져 끼니를 잊는 날도 있었습니다. 낮에는 공부하고 저녁에는 과외를 해서 겨우 먹고 살았습니다. 그렇게 1893년에 물리학 학위를 받았고, 장학금의 도움으로 1894년에 두 번째 학위를 받았습니다.

폴란드로 같이 가겠다던 남자

연구할 공간을 찾던 마리에게 한 폴란드 물리학자가 피에르 퀴리를 소개해 주었습니다. 피에르는 큰 실험실이 없었지만, 마리가 일할 자리를 구해 주었습니다. 과학을 향한 같은 열정이 둘을 가깝게 만들었습니다.

피에르가 청혼했지만 마리는 바로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고향 폴란드로 돌아가 일할 생각이었기 때문입니다. 피에르는 프랑스어 선생 노릇을 하게 되더라도 폴란드로 같이 가겠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마리는 여자라는 이유로 폴란드 크라쿠프 대학에서 자리를 얻지 못했습니다. 피에르의 편지를 받고 마리는 파리로 돌아왔습니다.

1895년 7월 26일, 두 사람은 종교 의식 없이 결혼했습니다. 마리는 신부 드레스 대신 짙은 파란 옷을 입었고, 그 옷은 그 뒤로 오랫동안 실험복이 되었습니다. 둘은 자전거를 타고 멀리 다니는 여행을 즐겼습니다.

우라늄에서 나오는 보이지 않는 빛

1896년, 앙리 베크렐이라는 과학자가 우라늄에서 엑스선처럼 물건을 꿰뚫는 빛이 저절로 나온다는 것을 알아냈습니다. 마리는 이 빛을 박사 논문 주제로 골랐습니다.

마리는 남편과 시아주버니가 만든, 아주 작은 전기도 재는 기계를 썼습니다. 그리고 우라늄에서 나오는 빛의 세기가 오직 우라늄이 얼마나 들어 있느냐에만 달려 있다는 것을 밝혔습니다. 여기서 마리는 이 빛이 물질끼리 부딪쳐 생기는 것이 아니라 원자 그 자체에서 나온다고 생각했습니다. 원자는 더 쪼갤 수 없다는 그때의 믿음을 무너뜨리는 첫걸음이었습니다.

비가 새는 창고 실험실

1897년 첫딸 이렌이 태어났습니다. 마리는 살림을 꾸리려고 학교에서 학생을 가르치기 시작했습니다.

부부에게는 제대로 된 실험실이 없었습니다. 연구는 대부분 학교 옆 창고에서 했는데, 예전에 의대에서 해부실로 쓰던 곳이었습니다. 바람도 잘 통하지 않았고 비까지 샜습니다. 몸을 지킬 아무 장치도 없이 방사성 물질을 만지는 일이 얼마나 해로운지, 그때는 아무도 몰랐습니다.

마리는 우라늄이 든 광석 두 가지를 쟀습니다. 하나는 순수한 우라늄보다 네 배, 다른 하나는 두 배나 센 빛을 냈습니다. 우라늄의 양으로 빛의 세기가 정해진다는 자기 실험이 맞다면, 이 광석 속에는 우라늄보다 훨씬 센 무언가가 조금 숨어 있어야 했습니다. 피에르는 이 연구에 점점 빠져들어, 1898년 중반에는 하던 결정 연구를 접고 아내의 연구에 합류했습니다. 이 생각은 처음부터 마리의 것이었고, 마리는 훗날 남편의 전기에 그 사실을 두 번이나 적어 두었습니다.

조국의 이름을 붙인 원소

1898년 4월, 부부는 광석 100그램을 달아 절구에 빻는 것으로 숨은 물질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그것이 얼마나 적게 들어 있는지, 결국 광석을 톤 단위로 처리해야 하리라는 것은 그때는 몰랐습니다.

그해 7월, 부부는 새 원소를 찾았다고 알리며 「폴로늄」이라는 이름을 붙였습니다. 마리의 조국 폴란드에서 딴 이름이었습니다. 폴란드는 그 뒤로도 20년을 세 제국에 나뉜 채 지내야 했습니다. 12월 26일에는 두 번째 원소를 알리고, 「빛」을 뜻하는 라틴어에서 따 「라듐」이라 불렀습니다. 「방사능」이라는 말도 이 연구 속에서 부부가 처음 만들었습니다.

라듐을 순수하게 뽑아내는 일은 길고 고됐습니다. 1902년, 광석 1톤에서 겨우 0.1그램의 라듐 화합물을 얻었습니다. 그 사이 라듐을 쓰는 산업이 생겨나 큰돈이 오갔지만, 부부는 특허를 내지 않아 거의 아무것도 얻지 못했습니다.

노벨상에서 빠질 뻔한 이름

1903년 6월, 마리는 파리 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그해 12월, 피에르와 마리, 베크렐 세 사람이 노벨 물리학상을 받았습니다.

처음 위원회는 피에르와 베크렐 두 사람에게만 상을 줄 생각이었습니다. 여성 과학자를 지지하던 위원 한 사람이 이를 피에르에게 알렸고, 피에르가 따진 뒤에야 마리의 이름이 들어갔습니다. 마리는 노벨상을 받은 첫 여성이 되었습니다.

상금으로 부부는 처음으로 실험 조수를 둘 수 있었습니다. 1904년 12월에는 둘째 딸 에브가 태어났습니다. 마리는 폴란드인 가정교사를 두어 딸들에게 폴란드 말을 가르쳤습니다.

비 오는 거리의 사고

1906년 4월 19일, 피에르는 쏟아지는 비 속에서 파리의 거리를 건너다 마차에 치여 그 자리에서 숨졌습니다. 마리는 무너졌습니다.

그해 5월 13일, 파리 대학 물리학과는 피에르를 위해 만든 교수 자리를 마리에게 맡기기로 했습니다. 마리는 남편을 기리는 세계 최고의 실험실을 만들겠다는 마음으로 그 자리를 받아들였고, 파리 대학의 첫 여성 교수가 되었습니다.

쏟아진 비난과 두 번째 노벨상

1910년 마리는 순수한 라듐 금속을 뽑아내는 데 성공했습니다. 그런데 1911년, 프랑스 과학 아카데미는 한두 표 차이로 마리를 회원으로 뽑지 않았습니다. 일부 신문은 마리를 외국인이고 신을 믿지 않는 사람이라며 헐뜯었습니다.

같은 해, 피에르의 제자였던 물리학자와 마리의 관계가 신문에 크게 실렸습니다. 회의에 갔다 돌아온 마리는 집 앞에 몰려든 성난 사람들을 보고 딸들과 함께 친구 집으로 몸을 피해야 했습니다.

그런 가운데 1911년, 마리는 라듐과 폴로늄을 찾아낸 공으로 노벨 화학상을 받았습니다. 노벨상을 두 번 받은 첫 사람이었습니다. 위원회 위원장은 추문을 들어 시상식에 오지 말라고 했지만, 마리는 가겠다고 답했습니다. 상은 폴로늄과 라듐을 찾아낸 일에 준 것이고, 자기 과학과 사생활은 아무 관계가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시상식 한 달 뒤 마리는 우울증과 콩팥 병으로 병원에 들어갔습니다. 1912년 한 해 대부분을 사람들 앞에 나서지 않고 지냈고, 14개월쯤 지나서야 실험실로 돌아왔습니다.

전쟁터로 간 「꼬마 퀴리」

1914년 제1차 세계 대전이 터졌습니다. 마리는 다친 병사를 빨리 수술할수록 많이 살릴 수 있고, 엑스선 사진이 있으면 잘라 내지 않아도 될 팔다리를 살릴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마리는 짧은 시간에 방사선 촬영과 해부학, 자동차 정비까지 익혔습니다. 엑스선 장비와 차, 발전기를 구해 차에 싣고 다니는 엑스선 촬영실을 만들었습니다. 사람들은 이 차를 「꼬마 퀴리」라고 불렀습니다. 처음에는 군의관 한 사람과 열일곱 살 딸 이렌이 마리를 도왔습니다. 전쟁 첫해에만 엑스선 차 20대와 야전 병원의 촬영실 200곳을 꾸렸습니다. 나중에는 다른 여성들을 조수로 길러 냈습니다. 그녀의 엑스선 장비로 치료받은 병사는 100만 명이 넘는 것으로 추산됩니다.

마리는 전쟁을 돕겠다며 노벨상 금메달을 내놓으려 했지만 프랑스 은행이 받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노벨상 상금으로 전쟁 채권을 샀습니다. 그래도 프랑스 정부는 전쟁 중의 이 공을 끝내 공식으로 기리지 않았습니다.

미국에서 받은 라듐 1그램

1921년, 마리는 라듐 연구에 쓸 돈을 모으러 미국을 돌았습니다. 미국 대통령 하딩은 백악관에서 미국 사람들이 모은 라듐 1그램을 마리에게 건넸습니다. 그 전에 프랑스 정부가 훈장을 주겠다고 했지만, 마리는 받지 않았습니다.

마리가 이끈 라듐 연구소에서는 노벨상 수상자가 넷 더 나왔습니다. 그 가운데에는 딸 이렌과 사위도 있었습니다. 1929년 두 번째 미국 여행으로 고향 바르샤바의 라듐 연구소에 쓸 라듐을 마련했고, 그 연구소는 1932년 문을 열었습니다. 소장은 파리에서 함께 공부하자던 약속의 그 언니, 브로니스와바였습니다.

주머니 속의 시험관

방사능이 몸에 얼마나 해로운지 아직 모르던 시절이었습니다. 마리는 방사성 물질이 든 시험관을 주머니에 넣고 다녔고, 책상 서랍에 넣어 두고는 어둠 속에서 은은하게 빛나는 모습을 이야기하곤 했습니다. 전쟁 때는 가림막도 없는 장비에서 나오는 엑스선을 그대로 쬐었습니다.

1934년 7월 4일, 마리는 프랑스의 한 요양원에서 예순여섯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피를 만드는 골수가 망가지는 병이었고, 오랫동안 쬔 방사선 때문이었던 것으로 여겨집니다.

마리는 남편 곁에 묻혔다가, 1995년 남편과 함께 파리 판테온으로 옮겨졌습니다. 프랑스가 큰 공을 세운 사람을 모시는 곳으로, 자기 공으로 그곳에 묻힌 첫 여성이었습니다. 지금도 마리가 남긴 1890년대의 공책과 서류는 방사능이 남아 있어 납으로 둘러싼 상자에 보관하고, 보려는 사람은 보호복을 입어야 합니다. 요리책까지 그렇습니다.

운명 앱으로 본 마리 퀴리

운명 앱 풀이는 마리 퀴리를 「날카로운 금속 날이 부드러운 봄 숲 사이를 가로지르는 것처럼, 섬세함과 예리함이 공존하는 독특한 매력을 지닌 사람이세요」라고 풉니다. 광석 1톤을 걸러 0.1그램을 찾아낸 끈기, 남이 못 보고 지나친 한 줄의 숫자에서 새 원소를 짚어 낸 눈은 「예리함」 그대로입니다. 딸들에게 끝까지 폴란드 말을 가르치고 첫 원소에 조국의 이름을 붙인 마음은 「섬세함」 쪽에 가깝습니다.

이 글은 한국어·영어 위키백과의 「마리 퀴리」 문서를 바탕으로 썼습니다.

생일 출처: 위키데이터 Q71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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