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인 사주 사전 · 1879–1944

한용운

『님의 침묵』을 쓴 승려이자 독립운동가.

차례
  1. 아홉 살에 글을 꿰뚫은 아이
  2. 아들을 외면한 아버지
  3. 러시아를 향한 방랑
  4. 만주에서 맞은 총탄
  5. 옷자락에 숨긴 선언문
  6. 출옥 날의 매서운 질타
  7. 시로 피워낸 저항
  8. 「똥보다 더러운 것」
  9. 「내가 아는 육당은 이미 죽었소」
  10. 광복을 한 해 앞두고
  11. 운명 앱으로 본 한용운
차례
운명 앱으로 계산한 사주
시일월연
?甲나무壬물己흙
?申원숭이申원숭이卯토끼

운명 앱 풀이 — 「압박이 있는 상황에서 오히려 명석해지는 유형이세요.」

양력 1879-08-29 · 남 · 태어난 시는 기록에 없어 「?」로 둡니다

나무 2 · 불 0 · 흙 1 · 쇠 2 · 물 1 — 기운이 여린 사주 · 나를 돕는 기운: 물

운명 앱과 같은 방식으로 계산했습니다. 옛날 달력으로 적힌 생일은 지금 쓰는 달력의 날짜로 바꾼 뒤 계산합니다.

아홉 살에 글을 꿰뚫은 아이

한용운은 1879년 8월 29일, 음력으로는 7월 12일에 충청도 홍주에서 한응준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어릴 때 이름은 유천이었습니다. 그가 직접 어린 시절을 이야기한 적이 없어서, 그 무렵의 일은 많이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남은 이야기가 있습니다. 여섯 살부터 한문을 배웠고, 아홉 살에는 글의 이치를 꿰뚫어 「신동」이라는 칭찬이 자자했다고 합니다. 1894년 동학 농민군이 일어났을 때 아버지는 나라 군대의 참모로 홍주성을 지켜 냈지만, 이듬해 병으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아들을 외면한 아버지

그가 직접 남긴 회고에 따르면, 열여덟 살이던 1896년 그는 처음 고향을 떠나 서울로 향하다가 설악산 오세암에 들어가 불교와 인연을 맺었습니다. 훗날 쓴 글 「나는 왜 중이 되었나」에서 그는 세상에 대한 관심과 먹고살 방편 때문에 집을 떠났다고 짧게 적었습니다.

집안의 기록은 조금 다른 이야기도 들려줍니다. 아버지의 삼년상을 치른 뒤인 1898년 2월 10일, 그는 전정숙과 결혼했습니다. 1904년 12월 21일 아들 한보국이 태어났지만, 그때 그는 이미 강원도 백담사에서 출가해 승려가 되어 있었습니다. 훗날 아들이 아버지를 보러 찾아왔을 때, 그는 아들을 외면했다고 전해집니다.

러시아를 향한 방랑

불교 서적과 더불어 량치차오의 「음빙실문집」 같은 책들을 접하며 근대 사상을 받아들이던 시기였습니다. 서계여가 쓴 「영환지략」을 통해서는 조선 이외에도 넓은 세상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세계의 동향을 파악하기 위해 세계여행을 계획한 그는 백담사에서 내려와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로 건너갔습니다.

러시아로 향했던 여정은 밀정으로 인해 위태로운 상황을 맞았습니다. 다행히 구사일생으로 귀국할 수 있었으나, 각처에서 의병 활동이 일어나 어지러운 상황이 이어졌습니다. 그는 함경남도 안변의 석왕사를 찾아가 암자에서 참선생활을 하며 머물렀습니다. 참선은 불교에서 마음을 집중하여 깨달음을 얻기 위해 수행하는 것을 말합니다.

만주에서 맞은 총탄

1912년 9월 10일부터 10월 8일까지 만주 동북삼성을 방문했습니다. 독립군 훈련장을 순방하며 그들에게 독립정신과 민족혼을 심어주는 일에 전력을 다했습니다. 그러던 중 통화현 굴라재에서 일진회 첩자로 오해를 받는 일이 일어났습니다. 일진회는 당시 일본의 앞잡이 노릇을 하던 비밀 결사 조직입니다.

그 과정에서 목에 총을 맞았습니다. 한용운은 마취도 하지 않은 채 몸속의 총알을 제거하는 수술을 받아야 했습니다. 수술을 마친 그는 귀국하여 동래부 범어사로 내려갔습니다.

옷자락에 숨긴 선언문

1919년 3·1 만세 운동 때 민족 대표의 한 사람으로 독립 선언을 한 그는 탑골공원에서 붙잡혀 징역 3년을 선고받았습니다. 함께 갇힌 이종일은 훗날, 고문과 위협에 벌벌 떠는 몇몇 민족 대표에게 그가 똥오줌을 퍼부었다고 돌아보았습니다.

감옥에서 재판을 받는 동안 그는 변호사도, 밖에서 넣어 주는 음식도, 돈을 내고 풀려나는 보석도 모두 거부했습니다. 그러던 중 '조선독립의 서'를 집필하다가 발각되어 결국 원본을 형사에게 제출하게 되었습니다. 이 글은 인간의 권리와 자유, 평등을 가로막는 무력이나 압제 정치는 결국 스스로 패망하게 된다는 내용을 담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일본인 서울지방법원 검사에게 원본을 제출하기 전, 일부 내용을 휴지에 작은 글씨로 옮겨 적었습니다. 그리고 그 휴지를 접어 형무소 밖으로 나가는 의복의 갈피에 몰래 집어넣었습니다. 이렇게 외부로 빠져나온 선언서는 상해까지 전달되었습니다. 1919년 11월 4일,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기관지인 독립신문에는 '조선독립에 대한 감상의 대요'라는 제목으로 이 내용이 보도되었습니다.

출옥 날의 매서운 질타

1921년 12월 22일, 한용운은 3.1독립운동의 민족대표자였던 최린, 함태영, 오세창, 권동진, 이종일과 함께 가출옥되었습니다. 가출옥이란 형기를 다 채우지 않고 미리 풀려나는 것을 말합니다. 그가 밖으로 나오자 그를 맞이하러 많은 사람이 찾아왔습니다.

하지만 한용운이 인사를 건네는 모습을 본 면회객들은 무언가 이상하게 여겼습니다. 그러자 한용운은 자신을 마중 나온 사람들을 향해 「너희들은 이런 출옥의 인사를 할 줄은 알고, 인사를 받을 줄은 몰랐더냐?」라며 크게 질타하였습니다.

시로 피워낸 저항

1926년, 경성의 안동서관에서 시집 《님의 침묵》이 세상에 나왔습니다. 한용운은 이 시집을 통해 저항 문학을 펼치며 민족의 현실과 이상을 노래했습니다. 그는 기존의 시조 형식을 깨고 산문시 형태로 글을 썼으며, 충청도 방언과 토속어를 사용하여 민중의 정서를 담아냈습니다.

그는 총독부 학무국의 검열을 피하기 위해 특별한 화법을 사용했습니다. 시 속에서 '님'이라는 표현을 썼는데, 이는 해석하기에 따라 조선의 독립이나 자연을 뜻하기도 했습니다. 또한 부처로 읽히기도 하고 이별한 연인으로도 읽히게끔 하여 검열의 탄압을 피했습니다.

「똥보다 더러운 것」

조선 불교가 일본 불교에 매이지 말고 홀로 서야 한다고 외치던 그는, 한 강연에서 총독부와 일본 불교에 아첨하는 승려들을 꾸짖기로 마음먹었습니다. 그는 먼저 「세상에서 제일 더러운 것이 무엇인지 아느냐」고 물었습니다.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그는 「세상에서 제일 더러운 것은 똥이올시다. 똥! 그런데 그 똥보다 더 더러운 것이 있습니다. 무엇이겠습니까?」라고 다시 물었습니다. 이번에도 대답이 없다가, 가난한 사람들의 주검을 씻겨 본 적 있는 한 사람이 「시체」라고 했습니다. 똥 옆에서는 밥을 먹을 수 있어도 송장 썩는 냄새 옆에서는 음식이 넘어가지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강연대를 주먹으로 내리치며 마지막으로 물었습니다. 「시체보다 더 더러운 것이 있으니 그것이 무엇일까?」 그리고 스스로 답했습니다. 「바로 여기 앉아 있는 31본산 주지 네놈들이다!」 31본산은 그 무렵 조선 불교의 중심이던 큰 절 서른한 곳입니다. 말을 마친 그는 곧바로 단상에서 내려왔습니다.

「내가 아는 육당은 이미 죽었소」

최남선은 뜻을 꺾고 일본 편으로 돌아선 사람이었습니다. 1937년 누군가 그 앞에서 최남선 이야기를 꺼내자, 그는 「아직도 최남선이 살아 있소?」라고 되물었습니다.

탑골공원에서 최남선이 다가와 인사를 했을 때, 그는 처음에 아는 척도 하지 않았습니다. 최남선이 자기를 못 알아보겠느냐며 거듭 이름을 대자, 그는 차갑게 말했습니다. 「내가 아는 육당은 이미 죽었소.」 육당은 최남선의 호, 곧 이름 대신 부르던 별명입니다.

광복을 한 해 앞두고

중풍으로 인해 몸을 움직이기 어려워진 한용운은 서울 성북동의 집 심우장에서 지냈습니다. 1935년 다 지은 이 집은, 총독부 건물을 마주 보기 싫다며 일부러 북쪽을 보게 지었다는 이야기가 전합니다. 안재홍, 방응모, 김성수 등 친구들이 십시일반으로 모은 생활비로 어렵게 생계를 이어갔습니다. 1944년 6월 28일, 조선총독부의 특별 훈련으로 인해 공습경보가 발령되었을 때 그는 혼수상태에 빠졌습니다.

그는 1944년 6월 29일 심우장에서 세상을 떠났습니다. 승려가 된 지 49년, 나이 66세였습니다. 광복을 한 해 앞둔 때였습니다. 그는 그토록 바라던 독립을 끝내 보지 못했습니다.

운명 앱으로 본 한용운

운명 앱 풀이는 한용운을 「압박이 있는 상황에서 오히려 명석해지는 유형이세요」라고 풉니다. 감옥에서 선언문 원본을 빼앗기기 전에 그 내용을 휴지에 깨알같이 옮겨 적어 옷자락에 숨겨 내보낸 일은 이 풀이와 그대로 맞습니다. 다만 그가 압박 앞에서 보인 것은 차분한 명석함만이 아니었습니다. 강연대를 내리치며 주지들을 꾸짖고, 변절한 옛 동지를 「이미 죽었다」고 잘라 낸 데서는 뜨거운 노여움이 먼저 보입니다.

이 글은 한국어·영어 위키백과의 「한용운」 문서를 바탕으로 썼습니다.

생일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용운」 — 출생 1879년(고종 16) 8월 2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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